예전에 쓴 글과 그림

겨울과 고드름에 대한 생각

유쌤9792 2009. 1. 20. 10:21



★ 그림설명; 왓트만지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림.


멀리 전깃줄 위로 새 한마리가 나른다.
겨울이 선 보이는 해는 아무리 붉은 옷을 걸쳐도 보는 마음은 춥다.

눈을 살그머니 뜨고 해를 바라 보았더니 겨울 해 가운데 구멍이 뚫렸다.

그 뚫어진 구멍 사이로 어릴 적 추위를 모르고 놀던 돈암동의 전봇대가 보인다.
추위도 모르는 채 `하루종일 밖에서 놀던 때가 바로 어제 같더니만 !!


멀리 해 내림의 징조가 보인다.
겨울의 해 내림은 정말 끈기도 참을성도 없다.

지난 겨울 언제쯤일까!
겨울의 북풍을 뒤로하고 달리다 보면 세월은 어느 틈에 갈팡질팡한다.

살아 가면서
아주 오래 된 기억은 갈수록 선명한 그림을 그려내는데
바로 전의 일은 어찌 그리도 깜깜한 색으로 늘 미로 속인가!

고드름 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고요하다.

밤의 시작은 긴 여행의 시작처럼 때로는 우울하고 불안하지만
때로는 어머니의 뱃속에서처럼 편안한 안식을 안겨 주기도 한다.

밤의 어둠에 도시도 맥을 놓고 스르르 잠이 드나보다. 



저렇게 굵게 자란 고드름을 보면 

어릴 적 한옥 지붕 밑으로 길게 자란 고드름을 따서
아이스케이키처럼 돌려가며 빨아 먹던 생각이 난다.

수수께끼를 읊조리며 <위로 자라지 않고 거꾸로 자라는 것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면서 가장 잘 자란 고드름 따기

동생을 엎드리게 하고, 동생의 등을 밟고 올라서도 손이 닿지 않던 고드름.
그 고드름을 엄마는 빗자루 끝으로 툭 툭 치며 땅으로 버리셨다.

해가 나서 혹  고드름이 녹아 사람을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걱정에 우리집 추녀 밑의 고드름은 남아 나는 것이 없었다.

굵은 가래떡처럼 도막이 난 고드름을 손등에 올려 놓아 보기도,
장난끼가 발동되면 친구나 동생의 등허리에 밀어 넣기도 했다.


어릴 때
밖으로 향한 창문을 열면 추녀 끝에 매달려 있던 고드름.
그 고드름의 투명함과 굵기를 보면서
그해의 겨울 추위를 일러 주시던 어머니.

어머니가 가신 뒤엔 좀처럼해서는 고드름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지난 겨울 아들의 방 창 밑으로 고드름이 자랐다.
아들이 호들갑스럽게 나를 불렀다.

<엄마! 우리 방에 와 보셔요. 창을 여니 저 고드름이 우와!>

아들과 나는 아주 오랫만에 신기한 구경을 했다.


멀리 아침 해 오름을 바라보다.

하루의 시작과 끝 느낌은 그 다르지만 해의 오름과 내림이다.

지난 밤 해 내림을 바라보며 어둠이 도시를 감싸 안는 것을 보았는데
해 내림을 바라 보던 창을 뒤로 하고 하늘을 보니
어느새 어둠을 한 꺼풀씩 벗어 버리고 있는 하늘이 보인다.

투명하게 보이던 고드름이 분홍빛으로 서서히 물드는 모습이 아름답다.

살아 가는 일이란 생각에 따라 여러 빛깔의 느낌을 채색 할 수 있는 것.

오늘은 무슨 색으로 시작 해 보는 날로 정 할까


아주 굵은 붓 한자루를 들고 하늘에 붉은 빛을 푹 찍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