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설명; 머메이드 종이에 크레용과색연필로 그린 그림.
세월이 우리를 보쌈하듯 메고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월의 곁을 슬금슬금 지나쳐 가는 것 같다.
늘 손에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은 기억들도
한 순간 안개처럼 미궁에 빠져 버린 기억으로 잊혀질 때가 많다.
푸른 산, 푸른 안개.
우리 눈엔 지척이 분간 안 되는 곳이지만 안개가 걷히고 나면
모든 것이 그대로 보여 지는 곳.
가슴이 따뜻한 기억은 아무리
긴 세월의 곁을 스쳐 지나 갔어도 어제처럼 느껴지는 것.
푸른 안개 산을 그리면서 더 푸근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음.
아마도 눈에 보이는 색은 푸른색이라도
마음으로 닥아오는 색은 핑크였나..
♥♥ 25일.
나는 25란 숫자를 너무나 좋아 한다.
매 달 달력에 한달의 끝무리를 차지한 25라는 숫자.
2월의 윤달처럼 있다가 없어지지도 않고,
없다가 나타나지도 않는 25일.
어릴적엔 그 25일이
한달에 서너 번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많았다.
그 25일은 아버지의 월급 날이였기에....
가지고 싶은 것들이 늘 많아 늘 입이 뾰루퉁하게 나와
"엄마 나 .. 사줘..!!"하고 조르면,
엄마는 마음에 있는 말인지 아니였지는 모르지만,
"25일 아버지 월급 타 오시면 사 줄께.
그 때까지 기다려라.
지금은 먹고 죽을 비상금도 없단다.."
울 엄마의 위트는 프로 급이였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돈암동 집에서 중앙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시거나,
아마도 돈암동 종점에서 전철을 타고 출근을 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의 25일은 우리 식구 모두에게 긴 기다림이며
소원을 이루어지게 하는 날인 것처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아버지의 월급 봉투.
편지봉투 보다는 조금은 컸고, 누런 색 갈포지 같은 봉투에
잉크가 뚝~뚝 떨어 질 것 같은 푸른 색으로
많은 숫자가 적혀 있던 봉투.
아버지가 엄마에게 건네주는 월급 봉투를 기다리던 25일.
그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썼다.
아버지가 들고 들어 오시는 우리들의 간식에도 행복이 있었고,
(여름에는 수박, 포도,등의 과일 종류의 간식이
겨울에는 고구마나 살이 눈 처럼 흰 만두나 찐빵과
알이 작은 구운 밤등이 우리들의 최대 주전부리 였다.)
또
엄마가 아버지에게 하시는 "당신, 수고 하셨어요"의
다정한 말을 들으면
아버지의 어깨가 더 든든 해 보이던 날.
그 날이 바로 25일이 였다.
엄마는 아버지의 월급을 받으면
월례 행사처럼 하시는 일이 있으셨다.
[월급 봉투와 메모지, 몽땅연필, 밥 풀, 그리고 엄마의 낡은 가계부.]
이런 것들을 다 준비 하신 뒤 늘 나를 부르셨다.
난 엄마의 비서가 된 듯 엄마가 부르는 단어를 작은 메모지에 썼고,
엄마는 그 메모를 돈에 일일히 붙이셨다.
밥풀 한 알에 한 단어씩이
돈이 이름표를 달았던 것이다.
-- 쌀 값, 연탄, 부식비, 약 값, 진주(할머니에게 보낼 돈),등등..
나는 매달 수 없이 많은 단어를 써야 했고,
엄마는 돈을 방바닥에 쭉~~`늘어 놓으시고
내가 써 주는 단어를 골라 붙이셨다.
엄마와 난 능숙한 솜씨로 말도 잊은채 숨 죽이고
이 일을 즐겼던 것 같다.
아버지 월급 봉투에서 나온 돈들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엄마의 가계부로 숨겨졌다.
그래도 어느 달엔 "영이의 옷값이나 00 등"이란
부제를 달은 이름표도,
내 이름이 오르는 달은 아마도 내 생일이나 명절 때 였던 것 같다.
내 이름을 쓸 때엔 연필에 침을 발라서 더 진하게 썼다.
이 월례 의식을 다 끝내고 난 뒤.
엄마는 긴 한숨을 몰아 쉬면서 늘 하시던 말.
"아~휴 이 쥐꼬리만한 돈으로 한 달을 어떻게 사누!"
아버지의 월급 봉투와 쥐 꼬리.
아버지 월급 봉투에 쥐 꼬리가 길었던 달은
내가 원 하던 것도 얻을 수 있었고,
온 식구가 모두 아버지의 능력에 감동해 하면서
불고기를 먹어 보기도,짜장면을 시켜 먹어 보기도..
나는 늘 이렇게 마음 속으로 기도를 했다.
"25일이 서너 번 쯤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아버지의 월급 봉투 안에
긴 쥐꼬리를 넣었으면 좋겠다고.."
아버지의 월급 봉투에 긴 쥐꼬리가 들었든.
안 들었든, 엄마는 아버지의 월급봉투를 연애 편지처럼
소중하게 간직하셨고,
우리들은 25일을 희망의 날로 기다렸다.
그러나 엄마가 나에게 잊지 않고 하시던 당부의 말.
"넌 네가 벌어서 네가 쓰고 싶은 만큼 쓰고 살아라.
엄마처럼 아버지 월급을 기다리지 말고 돈에 이름표 붙이지 말고,
생활비가 모자라면 더 달라고 손 내미는
그런 자존심 상하는 일은 하지 말고 살아라.
그리고 25일이 닥아오면 반갑기 보다
더 걱정이 되는 조바심을 겪지 말고 살아라.
그래서 엄마가 돈이 없어도
너에게 그림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이야...!"
엄마의 염원이 우리 자매에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나와 내 동생은
아직도 25일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말 한다.
25일.
아직도 내 마음을 흔드는 이유는
아마도 가슴이 훈훈해지는 기억들이 많았기 때문에서겠지.
기다림과 희망이 있다는 것.
삶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기억은 불멸이 아닐까...?
달력에서 25란 숫자를 보면.
내 엄마와 아버지가 너무 많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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