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이 오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하는 일이 있다.
먼저 커다란 비닐 봉투를 의자에 걸어 놓고
내 손이 가장 가깝게 닿는 곳의 장문을 연다.
그리곤 장 속의 물건을 하나씩 꺼낸다.
얼마나 꼭꼭 잘 넣어 두었는지
작은 장이나 서랍에서 나오는 물건들이
어느새 방바닥으로 가득 찬다.
장이 토해 놓은 물건 하나하나
나름대로 이야기를 다 지니고 있는 물건들이기에
-- 이것은 이래서 못 버리고,
-- 저것은 저래서 못 버리고,
이러 저러한 추억을 생각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 추억마저도
혼자만이 지니고 남겨 두기엔 너무나 많은 부피이기에
하나씩 하나씩 털어 내기로 했다.
나이를 먹으면 작은 <책 한권을 살 때에도>
버릴 때의 마음을 생각 해 신중하게 사라 했거늘.
오래 된 물건마다
내 눈에는 모두가 추억덩이로 소중하지만
남의 눈에는 고물로 보이기에 버릴 때도 돈이 든다나...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내 어릴 적 한옥 집엔 안방 뒤로 다락이 있었다.
울적하거나 잠이 안 오면 천정이 낮은 다락에 올라 가
작은 상자에 담아 둔 물건들 꺼내 보면서 날 새도록 만지작거렸는데..
이제는 그런 추억을 담아 둘 키 작은 다락이 없다.
한옥 집 다락을 생각하고 아파트 베란다로 내 놓은 물건들.
아파트 베란다 창고를 나간 물건들은 미련이 남아서 둔 것일 뿐.
여름 장마가 한차례 홍역을 치루고 지나가면
그 물건 군데군데에 곰팡이 얼룩이 흉물스럽게 날 노려본다.
가을이 오기 전 내 베란다는 과감한 다이어트를 시작해야하고
다이어트로 밀려 나가는 물건들은 너무나 많다.
이제부터 베란다로 밀려 내 보내기 전
뽀송한 모습 그대로로 정리 봉투에 담기로 했다.
그리곤 과감하게 아름다웠던 그 모습을 기억한 채
아쉬움을 남기면서 버리기로.......
버리기 전.아이들 방을 기웃거리면서 묻는 말.
" 얘들아 너희들 이 물건 필요하지 않니?"를
여러 번 힘주어 물어 본다.
그러나 아이들은 눈길 한 번 주지도 않은 채 고개를 젓는다.
앞으로 잠이 오지 않을 밤이 더 많아지겠지.
아이들에게 물어 보지 않고,내 가슴에게도 물어 보지 않고
추억들과 함께 나도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제 아무리 귀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빛을 잃는다.
★ 그림설명; 머메이드지에 아크릴물감과 복합재료로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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