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설명 : 종이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림
무서리를 고스란히 몸에 안은 채 나란히 서 있는 너무들
저 나무들은 이 겨울을 시작하려는
황량한 들판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혼자 보다는 언제나 둘이
그리고 여럿이 함께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뜨겁다.
<여행 1>
11월의 마지막 토요일을 바라보면
금요일 저녁 어둠을 밟으며 집을 떠났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다시 둘만의 오롯한 시간을
탐닉하는 중이다.
젊은 시절 기운이 펄펄하여 돌아다니길
좋아했어도 경제적인 갈증이 심했기에
지도에서 보는 명승지를 마음으로만 둘러보기가 전부였다
이제 우리 부부는 바람난 연인처럼
차에 시동만 걸면 목적 없이 집을 나선다.
늦저녁에 불빛도 없는 산길을 구비 구비 돌아 수안보에 도착하여
하룻밤에 만리장성도 쌓을 수 있는 정 담긴 휴식을 취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수안보 들녘은 나무 태우는 향기로
코끝이 짜르르했다.
충주의 들녘은 거의 다가 사과 과수원인 것 같다
길가의 멍석위로 쏟아져 나와 있는 사과들.
그리고 사과를 파는 노부부의 질박하고 퉁명스런 모습처럼
거칠고 볼품없이 때깔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건네주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으니
신선하고 향기로운 맛이 입안으로 가득했다.
달라고 하는 가격에서 한 푼도 에누리하지 않고
사과를 3상자나 샀다.
내 그런 모습이 신통하게 보였는지 무뚝뚝한 할아버지가
나무 상자에 사과를 꾹~꾹 누르며
뚜껑이 안 닫아 질 때까지 담고 계셨다. 정스런 모습이다.
여행을 하는 중 소중하게 얻는
재미중의 하나가 있다면 여행지에서 만나는
토속 식당의 나이든 내 부모님과 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다.
그리고 그 여행지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지방 특산품들을 만나고 사는 일이
내 여행에서는 그림을 스케치 하는 일 보다 더 큰 의미가 있고 기쁨이다.
가는 곳마다 부르는 가격대로 돈을 주고 물건들을 사서 주섬주섬 담는다.
더덕, 사과, 콩, 늙은 호박 등 봉지마다 담아 자동차에 실었더니
자동차 안은 어느새 행상을 떠나도 좋을 만치의 물건들로 가득 채워진다.
내가 무엇을 사든 <그것을 왜 그렇게 많이 자꾸 사느냐고> 핀잔하지 않는 지아비.
내가 집으로 돌아 와서는 누구도 주고 누구도 주고 하면서 봉지마다 나누어 담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보다도 더 좋아하는 지아비의 고운 심성이 늘 고맙다.
겨울의 냉기를 잔득 걸치고 있는 벌판은 빈 가슴이다.
허허 벌판에 서 계신 미륵불을 바라보던 내 마음에 묘한 감동이 일었다.
겨울이 아침공기처럼 상큼한 충격에 잠시 말문도, 발길도 그 자리에
멈추어 버린 순간. 그 힘이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무엇이든 간절하게 빌지 않는다.
안 빌어도 내가 원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부처님이 먼저 알고 계시는 것 같다.
우리의 마음을 담아 기와 불사를 했다.
그리고 冬至 기도에 동참도 하고,
미륵불을 뒤로 두고 다음 여행지로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다음엔 우리 아이들도 꼭 함께 오자>는
약속을 지아비와 지긋하게 했다.
<여행 2>
충주호의 유람선인 장회 유선 장 →제비 봉- →강선 대-→구담봉-→
채운 봉-→현학 봉-→옥순봉 등 단양 팔경의 일부를 보다.
날씨가 겨울답지 않게 화창하고 따뜻했기에 배를 타고 유람을 하여도
그다지 춥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그래도 바람이 차기는 했다.>
김홍도가 그림으로 남겼다는 단양의 절경인 옥순봉을 바라보면서
잠시 단원 김홍도 화첩에서 본 옥순봉의 윤기 흐르던 풍경을 생각했다.
묵언으로 도량을 도는 신도들 틈에서 미안스럽게
구인사의 거대한 겨울 풍경을 담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 방에서 무엇인가를
갈구하며 빌고 있는 모습들이 거룩해보였다.
버리면 버릴수록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난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추억을
더 담아 들고 돌아오는 것 같다.
<여행 3>
구인사 절까지 오르는 길이 숨 가쁘게 가파렀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은 더 가파르게 느껴졌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구인사에서 만난 <보살님>의 말대로
사는 것 다 인연 속의 움직임이 아니던가요.
<부모와 자식, 그리고 부부 나의 지인들
그 모두가 서로에게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많아 인연으로 만난 것이니
너무나 소중하게 다 잘 해야만 그 빚을 갚지 않겠느냐는 말.>
그 말의 반은 수긍한다는 마음으로 합장을 했고,
반은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 채
절 도량을 돌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피해
그들의 뒤를 따라 소리없이 걸었다.
가고 오는 길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냥 더불어 마음을 조금 씩 이라도 나누며 사는 수밖에
그러다 나눌 마음이 다 바닥이 나서
더 이상 줄 마음이 없으면 그때는 미련없이 가는 거지
1박2일의 여행을 마감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렸다.
겨울을 더 익게 할 비가 하염없이 왔다.
비가 오는 탓에 차가 많이 밀렸다.
그러나 그것도 여행의 일부분이기에 나와 지아비.
그동안 밀려두었던 이야기로 지루함을 잊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행지를 돌며 사 넣은 충주사과의 향이 차 안으로 가득했다.
어서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먹여야지 그리고 이웃과도 나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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