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쓴 글과 그림

아버지의 선물

유쌤9792 2009. 1. 16. 07:08

 

 



★ 그림설명; 왓트만지에 복합재료로 그린 그림.


아득한 그 예전 어디였던가
아스름하게 밝아 오는 어두어지는 하늘을 바라 보면서
내 좋아 하던 이를 눈 시리게 기다리던 시절이 떠오르다.

늘 <아버지>라고 부르다가 혼자 입 속으로 <아빠>라는 말을 써 본 나.

내 어릴 적 내가 어른이 되어도
나에게 유일한 등걸이의 남자는 아버지 뿐이였던 것 같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어리광이 생긴다.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아버지는 언제나 한 모습이다.

날 무조건 믿어주고 사랑하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산이고, 강이며 내 안식처였다.

지금도 마음과 몸이 힘이 들어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아버지의 넓은 가슴과 등을 생각한다.

그러면 어느새
쪽 빠지려던 온 몸에 기운이 다시 생긴다. 



< 아버지의 선물.>
<나를 울린 크리스마스 트리모양의 브로찌.>

나 어릴 적.
아버지는 공무차, 사업차 미국엘 자주 가셨다.
귀국하실 때에는 내 눈이 휘둥그레 할 선물들을 사 오셨다.

내게는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물감이나 붓등 미술 용구가 최고의 선물이였고,
다른 사람에게는 한국서는 보기 힘든 작은

물건들을 선물로 사 가지고 오셨으니,
아버지의 물건 보시는 안목은 미적 수준을 넘어선 명장의 눈이셨다.

아마 그 크리스마스 트리 브로찌도 년 말 이맘 때

즈음의 일 일 것이다.

아버지의 귀국이 반가웠던 것 보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있던 선물에 관심이 더 많았던 나.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 가방에서 나는 아주 특이한 냄새가 있었다.
그 냄새를 좋아 했던 나.

학교 갔다가 돌아 와도 아버지의 귀국은 아버지의 모습을 안 보아도
아버지 짐에서 나는 그 특이한 냄새로 알았다.
난 그 냄새를 "미국 냄새"라고 불렀다.

엄마는 그 냄새를 싫어 하셔서 아버지의 빨랫감부터

꺼내 놓으시려 하는데, 그런 엄마를 재치고,
아버지를 졸라 아버지의 선물꾸러미를 찾아 내곤 했다.

그날도 다른 날과 같이,
방바닥에 선물을 쭉 늘어 놓으셨다.
엄마 것은 주로 향수나 화장품.
내 동생들 것은 장난감이나 털 구두, 혹은 동물 털로 만든 모자등...

내 것은 훅!!! 헐  또 물감이나 곡선이 멋진 파렛트.
또.누구 것. 누구 것은 아버지의 선물 챙기기는 거의 산타 수준이셨다.

 

그런데. 그런데 ....
그 날은 내 눈에 확 들어 오는 물건이 있었다.
아버지가 엄마의 향수선물 대신 사 오신 물건이 있었다.
몽실몽실하고 부드럽기가 비단같은 까만 색 비로도 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꺼내시는 오색 찬연한 <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브로찌.>

우!!!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브~로~찌.
초록색 보석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아주 작은 온갖 색의 작은 보석들.
수백개의 작은 오색 등이 달린 것 같은 브로찌를 보는 순간
난 숨을 쉴 수가 없는 감격스런 느낌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크기는 성냥곽 정도의 크기 였던가..?
내가 태어나서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 보는 물건이였을 꺼다.

그 때만 하더라도 크리스마스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 만의 축제로 알았던 시절이 였고,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 였기에
아주 큰 교회나 성당이 아니고는
초록나무 트리에 오색 깜빡이 전구를 달 수가 없었다.

전구를 단다고 해도 지금처럼 불이 자유자제로 요란스럽게 물결치듯,
불이 들어 오는 것이 아니고 껌~뻑 껌~뻑 하는 정도 였다.

(트리도 인조나무 트리가 없어서 주로 교회 마당에 있는 나무에 솜을 얹고,
반짝이 끈을 달고, 우리들이 만든 버선 모양, 종 모양, 산타 모양의 그림등을 매달았다.)

일 년에 한번 보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오색 깜박이 등을 닮은 브로찌.

아버지에게로 바짝 닥아 앉졌고. 그 브로찌를 만져 보면서
"아버지 이것은 엄마꺼 예요.?"
"그렇단다. 진짜 보석은 아니지만 정교하게 아주 잘 만든 브로찌다.
당신의 비로도 한복에 달면 아주 예쁠꺼요.!!"

브로찌를 건네 주는 아버지도 받는 엄마의 모습 모두가 환한 얼굴이 였다.

 

나만 잉 TT;;;;
그날 이후 엄마의 브로찌를 나는 시계를 보 듯 거의 매일 꺼내 보았다.
그리곤 엄마와 약속에 약속을 했다.
"엄마 내가 크면 이 브로찌 꼭!! 나 줘야 해!! 약 속. 약속"
엄마는 내가 그 약속의 말을 꺼낼 때마다.
"그래..그래..알았다 너 주마!!"하셨다.

그래도 난 그 브로찌가 없어 질 까봐서 엄마의 서랍을 꼭 잠가 두었다.

물론 장농이나 서랍을 속을 뒤지다가 혼이 나기도 여러 번 이지만,
혼나는 일이 문제가 아니였으니...후~~후 

어떤 목표달성에 대한 끈질긴 집념이
아마도 어릴 적부터 그런 모습으로 키워졌었나 보다.

엄마가 브로찌를 달고 외출을 하시면 내것이라 된 것처럼.
"엄마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 하셔요!" 했다.

 

그런데...엉~~엉  한 동안 브로찌를 잊고 살았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 만 해도 늘 내가 관리하다시피 했는데....
고등학교 가서 공부가 바빠지고 딴 곳에 신경 쓰느라고
엄마의 그 보석 브로찌를 그만 말도 안 되게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 사촌 언니가 그 브로찌를 달고 집에 왔다.
내 눈을 의심 했던 사건이다.
어떤 연유에서 그 브로찌가 언니의 코트 위에서 반짝였는지...!

엄마의 신임을 돈독하게 받던 언니.
우리 집에서 소명이를 키우다시피 하면서 엄마의 뒤를 늘 돌 보아 주던 언니.
몸이 약 한 엄마에게 언니는 보호자 이상의 내조자였다.

순신이와 소명이를 업어서 키웠던 언니.
그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 그 결혼 선물의 일부로

<트리 브로찌>가 갔던 것 이다.

엄마의 마음도 유쾌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우리에게 보모와 같았던 언니가 나 만큼이나

그 브로찌를 탐 냈던 것 같다.
(내가 노래를 부르다시피 좋아 한 사실을 알고 계셨지만,
아마도 언니에 대한 답례의 마음으로 선듯 내어 준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내가 광적으로 좋아 하던 브로찌는 내 눈에서 사라졌다.

훗 날.
언니에게 그 브로찌를 얻어 볼 심산으로

온갖 애교를 다 떨면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언니는 그 브로찌를 잃어 버렸단다.
어느해 성탄절.
예배 보러 갔다가 사람이 많은 틈 사이에서 잃어 버렸단다.

말도 안 되는 사건이야!!! 엉!!엉!!!;
엄마도 미워!!!. 언니도 미워!!!!
그 충격으로 여러날 식음을 전폐하다 했고,

엄마에 대한 배신감에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께서 내 그런 마음을 아시고 <트리 브로찌>를 사 주시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셨는데도 그 브로찌와 같은 것을 볼 수가 없었다.

나도 어디를 갈 때마다 눈을 비비고 찾아 보아도

내가 본 그 브로찌는 없었다. 오직 내 마음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어릴적 마음에 담고 있던 작은 브로찌 한 개가
나에게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준 사건이다.

그 후, 밤 거리에서 빛나는 오색 불빛만 보면 가슴이 아리면서
그 브로찌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며 눈물이 난다. 아직도 흑흑

그래서 지금도 밤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 놀이를 보면
업소 광고를 위헤 밤 하늘에 쏴 올리는

분수처럼 퍼져 있는 불꽃놀이를 보면 가슴이 아리고아프다.

백화점 앞의 쇼 윈도에서 터지는 작고 예쁜 불꽃을 보면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트리 모양의 그브로찌가 생각난다.

그 트리모양의 브로찌에 대한 기억은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다.
그래도 아직 내 눈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그 브로찌의 모양을 그릴 수가 있다.

한번 마음에 두면 그 정을 모질게 끈지 못 하는 나.!!

난 미련한 바보 인가보다.
어둠에서 바라다 본 롯테백화점의 불빛 트리를 보고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다음에는 화폭 가득하게 그림으로 그려 볼꺼야>
그럼 내 마음에서 떠나가겠지...휴......!!!

막히는 차를 바라보면서 눈시울을 적시우면서

아버지와 브로찌를 생각했다.
다시는 생각하지 말자고 했었는데 미련이 질기다.

왜 또 그 <트리모양의 브로찌> 때문에 마음이 아팠는지

내 어린 딸에게 말을 했더니
<엄마 그림으로 그려 주시면 제가 만들어 드릴께요.
그 예전보다 비쥬 구슬이 더 예쁘니깐 내가 잘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 이제 그만 할머니와 그 브로찌 잃어버린 이모 용서하셔요..!>했다.

내 마음이 나이 어린 딸의 마음보다 더 옹졸 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딸아 ! 나는 말이다.
그 브로찌에 대한 추억과 사랑이 그리운거란다. >
누구에게나 가슴에 사무치는 한 가지씩의 추억은 남아 있단다.

명동 롯테 백화점의 겨울 이야기.

인사동 가는 길.
평소 같으면 10분이면 가는 곳을 오늘은 시청 앞에서
뭐 뭐 <대회>가 있다나

이 추워지는 날 얼마나 맺힌 이야기가 많아 그 많은 사람들이
시청 앞 잔디 밭에 모였다가 시가 행진을 한단 말인가!

찔끔거리며 움직이는 버스에서 꼼짝없이 1시간 30분을 있었다.
그 덕분에 명동 구경은 원없이 했다.

벌써 명동은 明洞의 위세를 날리고 있다.
나무마다 건물마다 작은 전구로 보석 같은 멋을 풍기고 있다.

<선물> <산타> <북> <눈사람> 내가 다 좋아하는 단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트리모양의 브로찌> 가 또 생각이 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