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쓴 글과 그림

울 엄마와 홍시

유쌤9792 2009. 1. 16. 07:05



★ 그림설명; 왓트만지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림.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홍시의 저 <주홍 빛>이라고 서슴치 않고 말 할 꺼다,

초겨울 하늘을 서서히 물들이는 노을의 <주홍 빛>이라고!



< 울 엄마와 홍시.>

겨울이 시작 될 때 즈음이면
동네 과일 가게엔 홍시가 얼굴을 보인다.

손끝이 스치기만 해도 툭 터져 버릴 것 같은 바알 간 모습이
너무나도 애처러워 보였기에
만져 보지도, 시선을 오래 주지도 못한다.

울 엄마가 제일 좋아하시는 과일이 있다면
늦가을에 선 보이고 겨울이면 요술처럼 사라지는 홍시다.

지금이야 그 어떤 과일도 계절을 파괴하여 어디에서나 구 할 수 있지만,
내 어릴 적엔 아니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홍시>는 아주 귀한 과일이었다.

사르르륵 얇은 껍질이
더위에 그으른 살갗 벗겨지듯 얇게 제 색으로 벗겨진다.
탱탱하고 동그란 모습의 홍시는 자다 깬 아이의 바알 간 볼 같기도 하고,
가슴이 봉긋하게 오른 숯 처녀의 떨리는 젓 가슴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 어릴 적에는
지금처럼 말랑말랑하고 주홍 빛 고운
<홍시>가 흔 하지만을 않았다.


가을이 익어 갈 무렵 우리 동네 낙산과 돈 바위산의 감들은
파란 하늘에 붉은 땡땡이 무늬를 수없이 찍었다.
그래도 내 눈에는 그 땡땡이 무늬의 감이
모두 그림의 떡으로만 보였다


내 머리에 남아 있는 기억 속의 감은
언제나 떫은맛의 감이었다.
한 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떫은맛이 번져
아무리 양치질을 해도 진저리가 쳐지던 감.

그러나 내 생각과 다르게 그림의 떡으로만 알던
땡감을 엄마는 아주 정성스럽게 닦으시고,
투박하고 거친 오짓으로 만든 소금독의 소금물에 담구고
이불로 둘둘 말아 겨울의 해 그림자가 길어지기를 기다리셨다.

그리곤 미쳐 독으로 들어가지 못한 감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구멍이 듬성듬성한 싸리 소쿠리에
담아 바람이 잘 통하는 다락 창 곁에 두셨다.

겨울이 무르익어  먹을 것이 궁 해져서
코를 킁킁 거리면서 군것질을 조르면 엄마는 다락에 버려 둔 듯한
싸리 소쿠리의 감들을 우리에게 내 놓으셨다.

껍질이 좀 두꺼워서 수저로 파먹어야만
게딱지 속을 파 먹 듯 알뜰하게 먹을 수 있던 감이었지만
그 맛은 최고였다.

그리고 소금 물 독에서 빠져 나온 감도 그 맛이 짠 맛은 가지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떫은맛이 어디론가 다 사라진 멍든 감이었지만 맛있었다.

요즘에는 긴 겨울을 기다리면서 싸리 소쿠리에 담아 두지 않아도,
소금물에 담그어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지 않아도 될 감이 
마음만 먹으면, 지갑만 들고 나가면 ,아니 인터넷으로, 전화 한 통이면 
달고 맛있는 <홍시>를 앉은 자리에서 받아먹을 수 있다.

엄마가 어디에 계시든 <택배비>만 주면
울 엄마가 그렇게도 좋아 하시던<홍시>는 바다를 건너,
산을 넘어서도 간단다.

나 이제  <홍시>를 사 드릴 수 있는 돈도 있고,
<홍시>를 엄마에게 상처 없이 곱게 벗겨드릴 요령도 생긴 나이다.
그런데 <홍시>를 좋아하시던 엄마만 영영 안 계시니 어쩌나!!


혹시 <택배비를 따따 블로 주면 저 하늘나라에까지 배달이 될라나>
잠시 멍청한 생각을 하면서 혼자 웃고 있다.


 < 집으로가는길 >

집으로 돌아가야 할 분위기를 여러 곳에서 본다.

멀리 나무 태우는 내음이 차가운 공기에 실려 코끝을 자극한다.
지는 해를 보내려는 거리의 빛은 더 푸르르다.

심연의 바다 속처럼 검은 하늘의 어둠은 순식간에
모든 사물을 삼켜 버린다.
그러나 그 어둠은 침울하면서도 아득한 희망을 준다.


집으로 가는 길.
기다려주는 이가 꼭 있을 것 같은 기대에
가는 발길은 늘 빙판 위를 나르는 스케이트 신은 발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