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설명; 머메이드지에 펜과 색연필로 그린 그림.
내가 태어나고 27년을 살았던 성북구 삼선 동 5가의 한옥 집.
지금도 꿈을 꾸면 한옥 집에서 동생과 노는 꿈을 꾼다.
동네의 곳곳을 끼니를 거르면서까지 누비며 뛰어 다니던 꿈을 꾼다.
나이를 먹었어도 내 어릴 적 집은 아직도 날 어린 아이로 놓아두고 있는 것 같다.
아침이면 정 남향 집이라 햇살이 좋아 늦잠을 도저히 잘 수 없던 집.
우리가 늦잠이라도 자려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채 응석을 부리면,
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얘들아 해가 너희들 똥 궁을 찌른다. 어서 일어나라.
일찍 일어나는 새가 모이를 더 줏어 먹는다고 했다.
게으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이란다."라고........
★ 아버지와 면도
아버지는 하루도 빠지지 않게 매일 아침마다 면도를 하셨다.
내 방에서 밖을 내다보게 붙여놓은 작은 유리로 아버지의 면도 전 작업을
지켜보던 일은 어릴 때 아침을 여는 또 하나의 신기함이었다.
내 방 옆 기둥에 매어 놓은 소가죽 혁대에 면도칼 날을 세우기 위한
<휙휙~~썩썩~>하는 소리가 들리면 아침이 시작 된다는 자명 종소리와 같았다.
아버지께서는 <나는 남들보다 수염이 더 잘 자란다고> 하시면서
그 송곳 같은 수염으로 우리들의 볼에 비비시려고 하면
우리 형제들은 질 겁을 하고 모두 다락 위로 뛰어 올라갔다.^^*
다락으로 뛰어 올라가는 우리들을 웃음으로 보시고는
아버지는 상아로 만든 손잡이의 면도칼을 가죽 혁대에 다듬으셨다.
아버지는 면도 칼 날 새우기 위한 다듬기 솜씨가 거의 예술이었다.
긴 가죽 혁대를 한 손으로 잡으시고는 아주 천천히 밑에서 위로,
그리고는 칼날의 방향을 바꾸어 위에서 아래로 내려 올 때는 아주 빠르게,
이런 왕-복 칼 가는 일이 여러 번 반복 된 다음에는
칼날이 섰는가~~ 손끝으로 살~살 만져 보셨다.
아버지께서 <혹~~ 손이나 베이시면 어쩌나 >하며 그 광경을 지켜 볼 때마다
숨을 멈추고 침을 꼴깍 삼키기도 했고, 너무 긴장하여 밖을 내다보는
내 모습이 아버지에게 방해가 될까 봐 쪽 유리에 눈 한 쪽만 대고 보던 기억이 난다.
칼 갈기가 다 끝나면 송이버섯처럼 희고 작은 솔을 비누 위에 대고
뱅글뱅글 돌리면 솔이 돌 때마다 솜사탕처럼 하얀 비누거품이 가득 생겼다.
그 비누거품을 얼굴에 바른 아버지의 모습은 꼭 겨울의 산타 할아버지를 연상시켰다.
대야 가득하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더운 물이 담겨져 있었고,
엄마는 면도하시는 아버지 곁에 서서 수건을 두 손으로 지극하게 들고 계셨다.
날이 반짝하게 선 면도칼로 아버지는 능숙한 솜씨로 면도를 시작하셨다.
칼이 한 번 씩 지나간 자리의 아버지 얼굴은 파란 색으로 상쾌하고 깔끔해 보였다.
너무나 잘 생기고,근사하신 울 아버지의 모습에 집이 환해 보이는 순간. ^^*
아버지의 면도 하시는 모습이 어찌나 멋있게 보였던지~~~
나도 남자들을 보면 제일 먼저 턱 밑을 차지한 수염자리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수염이 송곳처럼 뾰족한 남자는 아직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버지의 면도는 내가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할 때까지도 계속 되었다.
그러나 엄마가 돌아가실 즈음에는 아버지도 전기면도기를 사용 하셨는지
집에서 더 이상 면도 칼날 다듬기를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유품 안에 들어있던 면도도구들~~~~
소가죽 혁대는 다 닳아 아주 짧은 도마뱀처럼 변 했고,
하얗던 상아면도칼 손잡이는 누런 흙빛으로 갈변되고 칼날도 세월을 따라
무뎌져 손끝을 대도 짜릿하지 않으며, 송이버섯의 밑 둥지 같던 비누 거품 솔도
털이 다 빠져 홀쭉하다.
그러나 모양이 어떻게 변 하였든 아버지의 면도 도구들은 아버지를 기억하는
내 유년의 행복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아버지에겐 어렵던 미국 유학시절 쓰시던 물건들이라 향수를 불렀을 것이고,
나에겐 아버지를 내내 생각 할 수 있는 물건들이라 향수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그러기에 지금도 넓적한 소가죽 혁대를 보면 아버지의 면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움은 늘 작은 기억에서부터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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