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체험하기/알아서 좋은 것들--펌

[스크랩] 요즘 초등학생들, 어떻게 봐야 할까요.

유쌤9792 2007. 9. 17. 12:19

요즘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다' 는 말을 몸소 실감한다. 수 많은 프로젝트 과제가 쏟아지는데다가 이리저리 치이고 부딪히는데는 왜 이리 많은지 며칠간 블로그에 들르지도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래도 재밌는 건 바쁜 와중에도 사람 만날 시간은 있어서, 어제 이미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선배를 만나서 새벽까지 그의 고민을 들었다는 것이다.

 

 

교대를 다니는 나는 벌써 주위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이 꽤 된다. 작년 피 터지게 공부하는 그들의 모습을 잘 봐왔고, 1차 2차 시험을 턱턱 붙어 나를 기쁘게 한 것도 잘 아는데 1년이 지난 지금 왠지 '선생님' 이 된 그들의 모습은 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나 같은 학생 생각에는 '임용고시만 붙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이 만난 세상은 참 호락호락 한 곳이 아닌 모양이다.

 

 

이번에 만난 선배는 올해 4월인가, 5월인가 발령이 나서 이제 4개월 교사 생활에 접어 든 '생초짜' 인데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어찌나 근심 걱정이 태산 같은지 교사 생활 30년을 어떻게 하려고 이러나 하고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의 고민은 딴 곳에 있지 않았다. 그를 가장 괴롭히는 건 교장 선생님도, 부장 선생님도, 동료 교사들도 아닌 다름 아닌 자기네 반 학생들이라고 했다.

 

 

부임하자마자 3학년 담임으로 들어 가게 된 그는 학생들을 대하는게 진절머리 난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4개월 동안 "그만 둬야겠다." 는 생각을 이틀에 한 번 씩은 꼭 했다고 고백하며 "너는 웬만하면 교대 때려치고 딴 대학 찾아가라." 는 농담까지 건네는 그를 보면서 참 많이 안쓰러웠다. 유쾌한 성격에 누구와도 친해지는 넉살도 학생들에게는 먹혀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너무나 떠들길래 홧김에 "너희들, 공부할 사람은 공부하고 공부하지 않을 사람은 자!" 라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는데 놀랍게도 반 아이들 중 5명만 빼고 모두 책상에 엎드렸다고 한다. 선생님이 앞에 있든, 없든 상관 없이 떠들다가 천연덕스럽게 반성도 안 하고 책상에서 엎드려 자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선배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또 다른 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단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날에 학교에 나갔는데 반 아이들이 대뜸 선생님을 보고서는 "선생님! 성형수술 했죠? 다 알아요!" 하면서 깔깔 대고 웃었다고 한다. 처음 맞는 개학식에서 '잘 지내셨어요?' 나 '보고 싶었어요' 를 기대했던 선배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아니야. 선생님, 수술 안 했어." 라는 싱거운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낄낄댔다. 그 웃음이 재밌기도 하고, 한편으론 처량하기도 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이 이렇다. 이 선배는 4개월 밖에 안 한 초짜지만, 내가 아는 이들 중엔 10년 넘게, 20년 넘게 교사 생활을 한 사람들도 많다. 이 분들의 공통 된 이야기는 "요즘 초등학생들이 선생님을 너무 많이 힘들게 한다." 다. 2년 전,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 나를 담당했던 선배 교사는 나에게 "학교 생활 1년이면 애들이 짐승처럼 보인다." 는 농담까지 건넸더랬다. 그 땐 그 농담의 뜻이 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슬슬 그 뜻이 뭔지 알아가고 있다.

 

 

인터넷에 많이 노출됐기 때문일까, TV를 많이 보기 때문일까. 사회가 변해서일까, 시대가 변해서일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훼손되지 않았던 아이들의 순수함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때가 묻어나는 듯한 느낌이다. 담배 피고 술 마시는 아이들 때문에 초등학교에까지 학생부가 생긴다는 기가 막힌 소리를 하면서 '교사' 인 선배와 '예비교사' 인 나는 참 많이 허탈해했다.

 

 

"어떤 책을 좋아하세요?" 대신에 "어떤 게임 해요?" 라고 묻고, "선생님, 이것 좀 가르쳐 주세요." 대신에 "이거 인터넷에 치면 다 있어." 라고 말하는 요즘 초등학생들. 그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와 가르치고자 하는 이의 대화는 결국 모두 '어른들 탓이다.' 라는 뻔한 결론을 내 놓았다. 하기사 초등학생을 '초딩' 으로 만들고, 그들에게 때 묻은 세상을 보여준 것은 모두 어른들이 아니던가.

 

 

숙제를 사고 팔고, TV를 틀면 매번 선정적인 장면으로 가득한 프로그램들이 난무하고, 폭력성 짙은 게임을 만들어 팔고.....한참 뛰어 다니면서 놀 나이에 학원을 전전하고, 3~4개의 학원을 꼭두각시처럼 빙빙 돌다가 집에 와서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는 그 아이들의 현실은 결국 어른들이 만들어 낸 '이상한 초딩들의 세상' 이다.

 

 

어쩌다 '초딩규탄' 에서 '어른규탄' 으로 화제가 넘어가 한참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선배는 "공부 안 할거면 자버려!" 라는 소리에 주저 앉고 엎드려 쿨쿨 조는 아이들의 모습에 기가 막히는 한편, 안쓰럽기도 했다고 한다. 학교를 나가는 그 순간, 그 아이들이 집이 아닌 학원차에 실려 떠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애들이 뭐가 피곤하겠냐. 학교 숙제가 많은 것도 아니고, 우리처럼 술을 밤새 마시는 것도 아니고. 학원 빙빙 돌리다가 집에 와서 쉴 만하면 학교 숙제가 밀려 있으니 걔네들도 죽을 맛이겠지. 우리 반에 '형석' 이라는 애가 있는데 수업시간에 자기 소원 얘기를 할 때 그러더라고. 하루 동안 공부 안 하고 푹 자고 싶다고. 그게 초등학생 입에서 나올 소리냐." 면서 선배는 술잔을 들이켰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순수함, 아이들만의 시간, 아이들만의 놀이가 꼭 필요하다.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다니며 놀고, 학원에 앉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 침대에서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줘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 아이들에게는 자신만의 시간도, 자신만의 놀이도 어른들에게 박탈 당한 '사치' 일 뿐이다.

 

 

그러니 그들이 어린 나이에 지니고 있어야 하는 순수함, 깨끗함을 지워버리고 마치 '세상 모든 일' 을 다 안다는 것처럼 능글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왜 우리는 초등학생들에게 '버릇 없다' 라며 화를 내면서도 정작 '그들 역시 똑같은 어린 아이들이다.' 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는 것일까. 그들에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주었던 것일까.

 

 

요즘 초등학생들을 당신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혹 버릇 없다며 짜증을 내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그런 당신은 과연 초등학생들에게 '어린이다운 세상' 을 만들어 주는 떳떳한 어른인가. 세상이 달라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추해지는 건 어쩌면 초등학생들이 아니라 돈 밖에 모르는 채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어른들의 모습이 아닐런지. 선배가 말하는 학교의 '버릇없는 아이' 들의 이면에는 그들을 버릇 없게 만드는 어른들의 속물 근성이 너무나도 무섭게 도사리고 있다.

 

 

아이들의 순수함을 덮어 버리는 어른들의 세상......그 세상이 나는 소름끼친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
출처 : ♤끄적끄적 이야기♤
글쓴이 : 승복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