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억 속으로

엄마와 문풍지 바르기

유쌤9792 2007. 11. 27. 09:07



★ 그림설명; 왓트만지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림.

일렁이는 수면 위로 가을이 달려 온다.
빈 의자에 앉아 바람이 실어다 주는 가을 소식에 답을 쓸 준비를 한다.

앞 뒤 두서 없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갈겨 써 보내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이의 정겨운 마음을 일렁이는 물에서 본다.


***************************************************************************


■ 문풍지 바르기.


이렇게 하늘이 높아지고 볕은 따거워도 바람이 좋으면
귀했던 밀가루를 물에 풀어 솥에 올리시고는
내 얼굴 만큼이나 큰 나무 주걱으로 휘이~휘이 저으셨던 엄마.

솥이 달아 올라 밀가루 풀이 퍽~퍽 소리를 내며 입 풀무질을 시작하면
문창호지와 풀이 만나도 좋다는 신호란다. ^^*

묽게 개진 풀을 질긴 창호지에 발라 격자 무늬 방문에 바른다.

문창호지는 바르기가 무섭게 양지 바른 동네 담 곁으로 옮겨져
따거운 가을 볕과 바람에 쇠 북 소리가 나도록 탱~탱하게 말렸다.

엄마가 모아 두신 단풍이 곱게 든 나뭇잎이나~~~
봄 들녘을 풍성하게 해준 꽃잎 말린 것 등을
창호지와 창호지 사이에 넣어 꽃 무늬 눈썹을 달아 주고 나면
문창호지 바르기의 멋 스러움은 가을을 배경으로 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바람이 오고 가는 것을 막지 않으려고 멋내기는
방문의 손잡이 부분에만 쌍으로 대칭 무늬를 넣어 주었다.

보일 듯이 보이지 않을 듯, 은은하게 보이던 나뭇잎들도
밤에 불을 밝히면 어둠 속에선 제 몸이 지닌 자연의 계절 빛을 그대로 들어냈다.

꼭이나 첫 날 밤 새색시가 연둣빛 저고리의 다홍 빛 옷 고름을 풀어 내리듯

수줍게 살포시 보이는 꽃잎이나 나뭇잎이 다음 해 이른 가을까지 수줍어 했다.

겨우내내
바람이 문풍지를 두드리는 소리는 애잔한 음악 소리로 들렸고,

손에 침 발라서 꾹~~~욱 누르기 전에는 좀처럼 찢어지지 않던 문풍지는
그 질기기가 내 고집 보다 더 질기다고 했던 엄마 말씀이.....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낮이 서서히 긴 꼬리를 내리기 시작 하려고 하니
나도 겨울 채비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든다.

나무 문에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 창호지를 발라 볼까.....???ㅎㅎ

수 십년 전 마로니에에서 줍은 노란 은행잎을 넣어 멋 내기를 하고
작은 북이라도 칠 수 있게 밀가루 풀에 본드를 넣어서....^^*

가끔 생각지 못했던 기억이 떠 올라 마음이 동심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