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쓴 글과 그림

호수다방.

유쌤9792 2009. 1. 10. 22:31

 


★ 그림설명; 왓트만지에 아크릴 물감과 복합재료로 그린 그림.

하늘로 올라 간 내 어릴 적의 여러 기억들.
아직도 눈을 감고 꿈을 꾸면 내 어릴 적 놀던 동네가 보인다.

프라타나스 나무에서 우수수 날리던 목화 솜 같던 홀씨가 예뻤던 곳.

그 홀씨가 날려 솜사탕처럼 뭉치면
손으로 꼭~~꼭 뭉쳐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곳.

내 어깨에 날개도 달아 보았고, 가슴엔 장미 다발도 들어 보았다.

꿈에서만 이루어 질 수 있는 일들을 그림에서는 할 수 있어 좋다.



● 호수다방.

성북 경찰서 한 길 건너 편에 있던 목조 건물 2층.
일본식으로 만든 자그마한 집이다.
기와 지붕 밑으로는 넓직한 간판에 <호수다방>이라고
푸른색 페인트로 한자와 한글을 섞어서 썼고.
그 글자 아래엔 호수 위에 떠있는 백조인지 오리인지 알 수 없는 새가 그려져 있었다.

아마도 하얀 새 머리 위에 왕관이 씌여져 있었던 것을 보면 <백조>였나 보다.

창문은 모두 나무로 틀을 네모 반듯하게 바둑판 처럼 만들었기에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듯한 작은 유리창이였다.

우리 동네 한 길가엔 일본식 목조 건물이 여러 채 있었지만
그중 호수다방 건물의 유리창은 너무 작아서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리고 다방 안에서 흐르는 음악만은 언제나 클래식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종~~종 구성진 유행가를 청했던 것 같았는데
다방 주인 아줌마는 고개만 끄~덕 일 뿐이지 음악은 바뀌질 않았다.


어릴 적엔 엄마를 따라서 호수 다방엘 갔었다.

호수 다방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은 발을 내 딛을 때마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여
작았던 내가 살그머니 걸어도 어찌나 삐그덕거리는지
다방엘 살그머니 들여다 볼 수도 없이
계단 오르는 소리는 천둥소리처럼 요란했다.

서너평 남짓한 작은 다방 안은 어두었고
언제나 담배 연기와 사람들의 훈기로 텁텁한 느낌이 있었다.

밖으로 난 유리로 들어 오는 빛을 막아 어두운 분위기를 내기 위해
창 안 쪽으로 또 다른 덧문을 만들었다.
낮에는 덧문을 닫고 밤에는 덧문을 열어 빛 조절을 했던 것 같다.

밖이 보이지 않는 창가에 앉아 덧문을 몰래 열어 밖을 보던 나.

성북 경찰서 문 앞을 지키던 경찰 아저씨를 바라 보기도,
또는 경찰서를 드나드는 이들의 바쁜 모습을 신기해 하며 보았다.
(어릴 때엔 경찰서에 드나드는 이들은 범죄자와 형사만 있는 줄 알았다. ^^*)

우리 동네에서 성북경찰서가 제일 크고 마당이 넓은 돌집으로
경찰서를 드나드는 이들이 많아 사람 구경 하기가 돈암동 시장보다 나았다.

그러니 경찰서 길 건너 편에 있던 호수 다방은 사람들이 늘 붐빌 수 밖에....

엄마를 따라 호수 다방엘 가면 뜨거운 우유를 시켜 주셨다.

엄마가 다방엘 가는 일은
곗돈을 전해 주는 일로 한달에 한 번은 호수 다방엘 가셨다.
아버지가 계를 드는 것을 싫어 하셨기에 하는 수 없이 다방에서 돈을 주었던 것 같다.


내가 좀 커서는 그 곗돈 주는 일을
내가 직접 설아줌마(계주) 집으로 심부름을 갔다.
곗돈을 주전자나 냄비에 넣고
삼선교 시장까지 걸어가는 날은 늘 호수다방을 생각 했다.

물론 심부름 값으로 사탕 값 정도는 받았지만~~~~~~~우울. - -;;
호수 다방에서 먹던 뜨끈한 우유완 비교가 안 되는 심부름 값이기에
엄마의 곗돈 심부름 하기를 그렇게 좋아 하지는 않았다.



내가 어른이 되어 우유대신 커피를 마시러 호수 다방엘 갈 때 쯔음에도
다방 밖이나 안이나 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주인 아줌마도 내 어릴적 보던 한복을 그대로 입은 아줌마였고,
요란하게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내던 나무 계단은 더 시끄러워졌고,
밖과 안을 경계 지으려고 만든 덧문은
낡아서 덧문의 틈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어른이 되어 호수 다방엘 가도
언제나 덧문을 살그머니 열고 밖을 보길 좋아했다.

나를 만나러 오는 이들에게 차 한잔을 나누어 주던 곳.
아니 호수 다방엘 가기 위해
날 만나러 오는 이들이 있으면 으례 호수다방으로...

친구들에게 전화가 걸려 오면
(ㅎㅎㅎㅎ 주로 날 따라 다니던 머슴아들이였지만),

<< 경찰서 건너 편에 호수 다방으로 올래...?>> 했다.

호수다방에 온 머슴아들의 반응은 모두 다가 한결 같았다.
v << 우째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하지....? 노~~털 다방이야! >>

---- 짜아식 들. 한번 이라도
<< 이 호수다방 정취가 있고 푸근하다 .>> 했으면
나와의 역사가 달라졌을 텐데...
<호수 다방>이 시험지인줄도 몰랐나?..ㅎㅎㅎㅎ----


이렇듯 내 나이보다 더 오래 그곳을 지키고 있던 호수 다방은
우리 동네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내 사랑방이였다.

시간이 지나 현대식으로 장식이 된 다방들이
경찰서 옆에 우후죽순처럼 생겼어도
<호수다방>을 좋아 하던 이들은
늘 그 호수 다방의 호수가를 좋아 했던 것 같다.


우리 집도 그 동네(삼선동)에서 30년을 넘게 살다가 이사를 했고.
그래도 호수다방은 그 후로도 10년은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같다.

어느날 호수다방을 찾아 그 자리를 여러번 서성 였는데....

호수다방은 티끌 하나 남기지도 않은 채 내 눈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일본식 건물 자리엔 유리창이 커다란 현대식 건물이 들어 섰다.


느티나무 아래와 같은 푸근함을 주던
호수다방이 이제는 내 기억엔만 남아 있고.

기억을 더듬어 호수다방의 자리를 찾으려 해도
그 어수룩했던 분위기는
그 어느 곳에서도 한 조각의 흔적을 정표로 남기질 않았다.

(호수다방이 경찰서 앞 한 길가에서 흔적 없이 사라 진 것은
아마도~~~~ 성북 경찰서가 옛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기 시작 했을 때 쯔음이였겠지.)


호수 다방 위를 떠 다니던 <백조>가 너무 늙어 죽었나........?????

한복을 곱게 입고 있던 주인 아줌마가 백조 따라 돌아가셨나.......?????



나이가 들어 가니 생각 나는 일도 많고, 보고푼 이들도 많아진다.

< 그러기에 나이는 추억을 부른다고 했나....!>

<얘들아 너희들이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고 싶으면
젊어서 많은 추억을 만들어라..
그래야 늙어서도 마음이 젊고 늘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단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세삼 귀에 박히는 이유는?

아마도~~~~~~~ 국어 선생님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쯤 되셨던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키~~득 거리며 하던 말.
< 에그 ~~~선생님은 할아버지라서 그러셔~~~~~
무슨 추억 타령이야??? > 했는데...


호수다방을 생각하면****************

내 어릴 적 기억들이
추억이라는 그물에 걸려 몽땅 수면 위로 올라 온다.


그 그물 속엔 내 마음에 살아 있는 추억들이
싱싱한 물고기처럼 팔딱이고 있고.....


회색의 하늘로 비가 오기 직전의 우울과 그리움이 고개를 드는 날엔,

해가 눈 부시게 화창 해 내 虛한 가슴에 비수가 되어 꼿히려는 날엔,

호수다방을 떠 다니던 백조도

멀리 하늘을 나르다 가끔은 내 마음에 와 내려 앉는다.

그리곤 내가 백조 대신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나르는 상상을.......^ㅇ^**


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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