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사지로 들어 가는 입구에 서 있는 정자나무의 어린 잎이 곱다.
고달사지의 경계를 알려주기 위한 나무 울타리가
목장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물통이나, 몸을 담을 수 있는 욕조 통이 었을거라는 추측이~~!
이곳 해내림의 풍경을 참으로 고즈넉한 분위기 그 자체를 보여 준단다.
다음엔~~ 해내림 시간까지 머물러야 겠다.
어디엘 가든~~ 회귀 본능에 충실하느라고~~ 그자리를 뜨기에 바쁘다.
고려초기의 석조대좌
불상의 크기가 가름되는 석조대좌다.
청불이 었을까~~~? 석불이 었을까~~?
부처님은 어느 곳을 바라보고 계셨을까~~~?
대좌를 받치고 있는 연곷 문양만 선명하다.
대좌의 주인이신 부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밖으로 네 개의 기둥 자리가 보인다.
고달사지의 곳곳을 안내 해 주며 담긴 이야기를
소상하게 알려 주신 분이 있었기에~~무심하게 지나가고 말 흔적에
또 하나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고달사지 지킴이 역활을 도맡아서 해 주시는 최 거사님께 감사 드린다.
긴 시간을 고달사지 이곳저곳을 두루 살피며 설명을 해 주신 <최 거사님>
알 수 없는 진하고 짙은 인연의 끈이 낚시질을 시작하여
나를 고달사지까지 끌어 당겼고, 또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해 주고~~감사하다.
고달사지 저 도량에서 5000여 명의 승려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했고,
나라를 위해 사웠고,
중생들의 업장을 녹이기 위해 많은 염불을 했다하니~~~
저 넓은 도량에서 소리없이 흐르는 스님네들의 염원이 느껴진다.
살아 간다는 것~~ 점을 찍 는 듯 이어지는 호흡이라는데~~
세월이 다~~ 저 곳에 녹아있으려니~~~~!!
거북의 얼굴이 용의 얼굴이다.
눈도 부리부리하고, 콧구멍도 바람이 드나들게 큼직하다.
조심스럽게 용의 콧구멍을에 손을 더듬어 넣어 본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손 끝으로 전해져 온다.
이빨, 코, 미간~~눈 , 뿔과 귀까지~~ 다 살아 있는 듯하다.
긴 세월 동안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삭혔을까~~!
봄볕이 달궈 놓은 탑비의 조각이 뜨거운 연정을 보낸다.
잠시 <용거북>의 연정을 생각하며 볕을 피해 앉다. ^^*
하늘로 오르려는 용트림이 생생하다.
비가 오면 하늘로 오르려나~~~ 기다림의 세월이 길기만 하다.
977년에 원종대사를 기리는 비문이 완성되었다니
120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바로 어제 만들어진 비문같다.
거북의 꼬리가 등짝의 물결 무늬로 말아 올려져 있다.
한참을 바다로 항해 중인가 보다.
땅이 바다가 되고 하늘이 땅이 되는 것~~ 그도 다 마음이 알려주는 이치려니.
대한불교 조계종 고달사 (1)
혜목산 기슭의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건립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절은 고려 초기에 국가가 관장하는 3대 선원가운데 하나로
왕실의 보호를 받던 중요한 사찰이었으며
975년에 세워진 원종대사 비문에 의하면 당시에 고달원 또는 고달선원으로 불렸다고 한다.
1530년 간행 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달사가 기록 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까지는 번창했으나, 1799년에 편찬 된 <범우고>에는 폐사 된 것으로 나타난다.
절 터 안에는 깔끔한 모양과 세련 된 조각수법의 고달사지부도(국보 제 4호)
원종대사 혜진비 귀부와 이수(보물 제 6호),
원종대사 혜진탑(보물 7호), 고달사지석불좌(보물 제 8호)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고달사 쌍사자석등(보물 제 282호)가 있다.
고달사지 면적 : 58995 제곱미터(17,355평)
<고달사 안내서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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