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목요편지

2024년 2월의 셋째 목요일에~~

유쌤9792 2024. 2. 15. 09:06

 

 

★ 그림 설명 : 종이에 복합재로 그린 그림

 

비 한 두 번 뿌리고 나면 세상의 공기가 달라지다.

 

볕이 아무리 좋아도 외투 밖의 손이 시리면

아직 겨울인데 봄볕이라고 우기다.

 

봄은 시작만 되면 빠르게 세상을 바꾸다.

매년 봄마다 군항제를 보러 간다며 다짐했지만

아직도 보지 못하고 뉴스의 화면으로만 보고 있다.

 

봄이 시작되고 눈앞에 꽃들이 만개를 시작하면

입에 달고 하는 말이 있었다.

<내가 학교만 그만 두면 진해로 벚꽃놀이 간다.>

아이들이 내 말을 들을 때마다 봄이 되면

선생님보다 먼저 <진해의 군항제>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진해의 <군항제 벚꽃구경>을 다녀왔다고 자랑했다.

역시 나의 제자들은 상상력과 실천력이 대단하다.

 

음지엔 눈이 남아 있는데 밖의 풍경은 바뀌고 있다.

눈 위에 앉은 새는 발이 시린지도 모르고 봄을 노래한다.

 

 

 

2024년 2월의 셋째 목요일에~~

 

버스를 타면 내가 좋아하는 자리가 있다.

 

뒷문 곁으로 문을 등지고 앉는 자리와 문으로 보고 앉는

자리를 좋아하기에 다른 자리에 앉아 있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자리가 나면 자리를 옮기곤 한다.

 

<버스가 완전히 정차 한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큼지막하고 선명하게 버스의 곳곳에 붙어있다.

나도 버스가 완전히 정차 한 다음에 일어나는 것이

안심이 되긴 하지만 내릴 때에도 버스카드를 찍어야 하니

내리는 사람이 많아 버스 문 앞이 붐비면 마음이 초조하다.

 

나이가 들기 전에는 버스에서 내릴 때에도 토끼처럼

깡총 뛰면서 내려도 정류장의 보도블록과 멀어도

착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몇 년 전 부터는 버스에서 오르고 내릴 때

한 계단씩 밟고 오르고 내린다.

그리고 타고 내리는 곳이 버스와 멀면 아주 힘이 든다.

 

버스 기사님들은 시간과 싸우는 분들이니 마음의 여유가 없고

나는 넘어질까 봐 더 조심하게 된다.

 

영국에서는 버스가 정거장에 서면 버스입구가 보도블록과

한 몸이 된 것처럼 <푹~~> 소리를 내면서 버스가 내려간다.

 

버스가 보도플록과 한 몸이 되니 유모차도 휠체어도 오른다.

그리고 내릴 때가 되어 미리 문 앞으로 나가 있으려니

버스 기사가 나에게 하는 말 <무슨 문제가 있나요? >했다.

 

영국에 가면 한국에서 하던 대로 하면 혼이 나고

한국에서는 영국에서 하던 대로 하면 눈총을 받는다.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고갈되기에

나의 어눌한 행동들이 민폐가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오늘은 갑진년 2월의 셋째 목요일입니다.

 

설 명절의 연휴를 잘 즐기셨나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와 분주한 마음으로 보내시곘죠?

오늘도 재미나게 신나게 보내는 날이 되셔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갑진년의 구정 설 인사를 하기 위해 보문동에 가다.

평소엔 기도하는 사람들로 붐비던 곳인데

모두들 원하는 기도를 마쳤는지 경내가 조용하다.

 

보문사의 석굴암 새들의 수다에 마음을 내려놓다.

종류가 각기 다른 새들의 수다지만 질서 있게 떠든다.

순번을 정했을까 !!!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한다.

 

60년도 넘게 드나들던 보문사의 석굴암인데

산길로 올라가는 담장에 달린 철문을 처음보다.

낙산으로 오르는 문인가??? 신기하네.

 

다른 계절에는 나무들이 가려서 보지 못했겠지만

겨울에는 적나라하게 철문이 보였을 터인데 처음 보다니

내 눈도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사니 한심하네.

 

낙산은 초중고교 시절에 즐겨 오르던 산이다.

 

우리 동네의 등허리처럼 걸쳐져 있는 산이 낙산이다.

산은 작아도 숲이 깊고 울창하여 산을 넘어 다니지 말라고

동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당부를 하곤 했다.

우리 학교와 낙산이 이어져 있었기에 산을 타고 내려오면

멀리 빙 돌아 걷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1972년 석굴암이 완성 되고 나서는 낙산에서

내려 올 수가 없었기에 산을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

 

보문사 석굴암이 완성되면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그 닥 낙산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