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딸 결혼식에 장성한 딸의 결혼식에선 공연스레 마음이 울컥해지다. 좋은 짝을 만나 부모에게서 이소하는 기쁜 날인데 마음이 허전하며 슬프다. 그래서 난 결혼식에 잘 가지 않으려한다. 오늘 결혼식을 한 신부는 내 아들과 유년시절을 바로 옆집에 살면서 재미나게 보냈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자기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니 축복과 축하를 무한대로 보낸다. 우리 곁을 스쳐간 세월 속에 남겨진 추억들. 감사하고 행복했던 날을 기억하게 해 줘서 고맙다. 지난 기억 속으로 2021.06.05
껍질 채 먹는 참외 과일. 채소등을 껍질 채 먹길 즐긴다. 특히 과일의 대부분을 껍질 채 먹는다. 아주 천천히 오래 씹다보면 과일 지니고 있는 아주 특이하고 신비한 맛을 발견 할 수 있다. 우리 식구들은 과일의 껍질이 절대 목으로 넘어가질 않는다며 내 에 대해 괴기스러워한다. 참외를 아주 좋아한다. 어릴 때엔 엄마가 참외 속의 씨를 박박 긁어내고 주셨다 참외 씨가 장에 박히면 맹장염에 갈린다고 엄마는 씨앗 부분을 말끔하게 빼 내셨기에 난 늘 씨앗 부분의 맛이 궁금했었다. ㅋㅋㅋ 내가 맹장수술을 한 후. 난 참외 씨부분도 다 먹는다. 물론 우리 집 식구들에겐 씨 부분을 다 긁어 주지만 참외를 먹을 때마다 엄마생각이 난다. 한 여름이 되야 먹을 수 있던 참외도 요즘엔 언제나 사 먹을 수 있기에 좋다. 지난 기억 속으로 2021.05.10
봄마다 보는 꽃들인데. 봄이 아닌 다른 계절엔 내 주변의 나무들이 모두 초록색이라 관심없이 지나쳤다 그런데 봄이 되고 꽃이 피니 내가 놀래 기절하겠다. 너무나 개성이 강한 원색의 꽃이 잠자코 있었으니. 아주 짧은 날 별처럼 왔다가 가는 꽃들의 향연. 내년에 기억에 담아 뒀다가 응원해 줘야겠다 지난 기억 속으로 2021.04.28
노을은 늘 쓸쓸해 어디에 있든 노을이 내려 앉는 시각은 가슴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듯하다. 어릴 때엔 엄마의 저녁 반찬이 기대가 되어 우리 집 대문이 보이면 집으로 향해 달리느라 흙먼지를 일으켰다. 내가 좋아하던 꽁치. 고등어 구이의 냄새를 따라서달려 대문으로 들어서면 엄마가 웃으며 하시던 말 “넌 어찌 매일 뛰어 다니니? 성질이 벼락이구나. 생선은 제일 큰 도막은 네 것이니 천천히 들어오너라 !”하셨다. 결혼 후 남편은 생선을 입에도 대질 않았다 생선의 비린 냄새가 참기 힘들어 어려서부터도 먹질 않았고 한다. 그래서 나도 생선 요리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먹일 생선 요리는 낮에 미리하고 집안 환기에 난리었다 남편과 살면서 그렇게도 좋아하던 생선을 서서히 멀리하게 되었고 이제는 생선요리를 먹고나면 속이 불편하.. 지난 기억 속으로 2021.03.24
만두와 겨울 내 어릴 적 만두집은 집에서 멀리 있었다. 성북 소방서. 돈암동 시장 부근에 있기에 버스 정류장으로는 두 정거장 아릴 때엔 꽤 멀다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가보니 산책삼아 걸을 만한 거리었다. 겨울 밤은 길었기에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식구들이 만두 이야기를 종종했다. 고기만두와 팥 찐빵. 고기가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고기만두라고 부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내가 맏이엿기에 심부름은 주로 내가 도 맡아서 했다. 우리 동네에 만두집이 생겼다 하얀 수증기가 밤의 어둠으로 선명한 자태로 움직이기에 멀리서도 만두집이 유혹적이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요즘. 만두집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그러나 나는 추억으로 간식거리를 살 때가 많다. 식구가 둘이다 보니 남편이 먹질 않으면 혼자 물리도록 먹어.. 지난 기억 속으로 2020.11.24
사라지는 신문지 요즘 신문지 보기가 어렵다. 예전엔 집집마다 아침이나 저녁이면 신문이 마당으로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돌림노래처럼 들렸다. 자전거에 신문을 싣고 집집마다 마당으로 던지던 소년도 있었고 신문의 종류가 다양해 지면서는 대문 앞에 이란 글자가 붙은 집들도 많았다. 조간신문은 아버지의 몫이라 아버지가 먼저 보시고 우리가 보게되면 신문의 순서대로 맞춰 두거나 처음처럼 가지런하게 접어두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한 소리를 찐하게 들었다. 신문에서 제일 좋아했던 면이 만화와 티브 프로 안내 였으니 뭐 신문을 본다고 말 할 수는 없었다. ㅋㅋㅋㅋ 인터넷이 온 세상을 거미줄처럼 퍼지고 난 후부터는 우리 집도 신문을 보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동안 신문지를 두루두루 사용하던 습관이 불편해져 신문지가 그립기도 했다. ㅋㅋㅋㅋ 아.. 지난 기억 속으로 2020.11.15
우리 동네 신작로 우리 동네 신작로 중 어느 구간엔 낙엽을 쓸지 않고 그냥 두다. 그래서인지 거리 풍경이 그림이며. 영화 속 이다. 동행은 아니지만 같은 길을 걷는 이들과는 동행처럼 생각되다. 발 밑이 낙하된 낙엽으로 푹신하다. 그래도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걷다. 내 걸음걸이가 갈수록 노인의 특이한 걸음걸이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끝이 보이는 낙엽 길. 조심조심 걷다. 지난 기억 속으로 2020.11.15
모과 추억 우리아파트 화단엔 과실 나무가 많다. 그 중 모과는 아주 탐스럽게 주렁주렁달리다 꼭이나 청포도처럼 보이기도 왕대추같기도하다. ㅋㅋㅋㅋ 가을이 푹 익을 때면 우리 집에 대문에 모과를 문고리하던 이웃이 있었다. 아이 머리크기보다 약간 작은 모과였다. 정읍 고향에서 올라 온 모과라면서 늘 서너 개를 선물해 왔다. 서울나무에서 열리는 모과는 정읍의 모과보다 향이 부족하다면서 늘 겨울시작이면 모과가 생겼다. 적당하게 작은 것 두 개는 내 차 뒤에 소쿠리에 담아두면 모과 향기가 차 안으로 그득하게 정읍의 향기로 채워졌다. 어느 해였던가 !! 이태원초교에서 근무하던 퇴근길. 남산의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 집으로 오던 길. 그 날따라 나의 운전이 거칠었는지 언덕의 아래부분에서 차가 덜컹하면서 차 뒤칸 소쿠리에 있던 모과.. 지난 기억 속으로 2020.11.10
양재천의 코스모스 내 시모님은 코스모스 꽃을 아주 좋아하셨다 가을이 되고 코스모스가 화단에서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면 내 시모님은 늘 추억을 말하시곤 했다. 그 추억은 시모님의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덕소 기찻길 역전의 코스모스 길에서 시모님을 기다리시던 엄마 이야기. 밤이 되면 호롱불을 흔들면서 딸을 반기셨다던 이야기였다. 내가 처음 시모님의 추억을 듣기 시작한 가을은 내가 결혼하던 해 내 나이 30살 즈음이었다 시모님은 코스모스와 덕소. 그리고 친정엄마의 이야기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삼십년 넘게 나에게 해 주셨다 가을이면 고전소설처럼 시모님의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꼭이나 내 엄마가 나를 코스모스 길에서 기다릴 것만 같다. 지난 기억 속으로 2020.10.23
맨드라미의 씨 붉은 입술을 상기 시켜주는 맨드라미의 고혹한 모습을 보니 엄마의 가을이 생각난다. 매년 겨울로 달려가기 위한 드 높은 가을 하늘을 보면 엄마가 하시는 일이 있었다. 봄 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는 화단의 꽃들에게서 그 해의 씨앗을 받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셨다 엄마는 화단의 여러 가지 씨앗을 모우기 위해 우리의 다 사용하고 버리려는 공책을 달라고 하셨다 공책 종이를 여러 크기로 자른 후 가장자리를 밥풀로 붙여 네모 난 봉투를 여러 개 만들어 잘 보관하셨다 봉투의 크기는 크고, 작게 여러 개를 만든 후 이란 글자를 눌러 쓰신 후 상자에 담아 보관하시고는 꽃 들이 씨앗을 익혀내길 기다리셨다. 봉투 만들기 만으로도 엄마의 가을 추수는 어느정도 마무리가 되는 듯 보였다. 우리 화단의 꽃 중 맨드라미 씨앗 받기가 제.. 지난 기억 속으로 2020.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