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억 속으로 280

멸치 대가리와 똥 따기.

동생에게 물 좋고 맛 좋은 멸치가 왔다. 아주 작은 멸치는 별 손질없이 멸치 볶음을 조리하면 되지만 덩치가 좀 있는 멸치는 한 마리씩 손질을 해야한다. 일부 요리사들은 그냥 조리를 해도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대가리와 똥을 떼내고 나면 조리를 해도 깔끔하고 보기도 좋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엔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엔 사는 형편이 비슷하고 거의 다 못 살았기에 도시락 반찬도 반 아이들 모두가 다 비슷하게 싸 왔다.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이들도 많았기에 학교에서 옥수수 빵을 점심대신으로 나누어 주기도 했다. 우리들의 도시락 반찬. 콩자반. 멸치볶음. 김치. 거의 이런 수준이었기에 도시락을 싸 가지고 등교 하는 것만으로 감사하던 시절이었다. 1963년. 내가 3학년이던 때..

옛 날 돈카츠

아이들이 어릴 때엔 주말마다 집에서 돈카츠를 튀겼다. 돈카츠를 만드느라 온 집안으로 고기 두드리는 소리가 다듬이 방망이 소리로 들리고 빵가루 묻히늘다 집 안으로 빵 부스러기가. ㅋㅋㅋ 그렇게 돈가츠 고기를 장만하고 기름에 튀겨내면 우리 집 아이들과 내 어머니가 아주 맛나게 드셨다 엄마는 돈카츠를 좋아하셨다. 그러나 오래 드시지도 못하고 세상을 뜨셨고 내 아이들은 어느새 중년의 나이를 넘어섰기에 돈카츠를 즐기지 않는다. ㅋㅋㅋㅋ 후배가 진도의 식당에서 찍어 보낸 돈카츠 사진이다. 옛날 돈카츠라는 설명이 붙었다고 했다. 크림스프와 돈카츠는 커플 맞다. ㅋㅋㅋㅋ

경복궁.

내가 즐겨 찾는 경복궁. 예전의 자연스런 풍경보다 복원해 넣은 풍경이며 복원을 준비하는 공사로 여러 해 동안 궁은 소란스럽다. 예전엔 시간이 헐렁하게 내 주머니에서 흘러내리려 할 때면 경복궁의 경내를 걸었다. 시절은 다르지만 옛 어른들이 걸었던 길을 내가 걷고 있다는 생각에 종종 가슴이 벅차 오를 때도 있었다.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달리다보면 강북의 종점이 바로 경복궁 정문을 바라보며 내릴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산책 궁. 덕수궁. 경복궁. 그리고 경희궁도 있다. 요즘엔 집의 문 밖을 나가지 않으니 버스타는 것도 익숙함에서 제외되는 중이다.

봉숭아 물 들이기

우리 집 작은 화단엔 온 갖 꽃이 무성했다 가을로 들어 서는 이맘 때즈음엔 봉숭아 꽃이 무성하게 꽃을 달아 탐스러웠다. 붉은 봉숭아 꽃을 따다가 백반을 넣고 약 절구에 곱게 빻아 뒀다가 우리가 잠 들기 전 우리 손톱에 봉숭아를 도톰하게 올리고 비닐에 손가락 끝을 한 개씩 정성스럽게 싸 주셨다. 봉숭아 물이 잘 들지 않을 까봐 잠도 설치고 아침에 봉숭아를 손에서 빼내면 손가락 끝과 손톱이 비정상적으로 붉게 물이 들어 꼭 붉은 고추 같았다. 그리고 손가락은 쪼글쪼글하게 변해 있어 은근히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나면 살갗에 묻어 있던 붉은 봉숭아 색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손톱에만 붉은 물이 남아 있었다. 봉숭아 물이 사라질 까 봐 손톱깎기를 거부하던 어린시절도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봉숭아가 실..

영국 본머스에는 !!!

본머스 아들네 집 앞마당에서 일광욕 중인 까치. 내가 저 곳에 있을 때엔 까치들도 낯가림이 심해 나무에서 잘 내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로 사람들이 뜸하게 다니니 낮에는 새들이 밤에는 여우가 놀러 온단다. 내가 저곳에 있었으면 그림으로 그림 동화를 만들었을거다. 영국 본머스의 여름 오후 10 시가 다 되는데도 한 낮처럼 환한 사진이 왔다. 아 !!!! 가고 싶어. 아들 보고 싶어. !!!

친구딸 결혼식에

장성한 딸의 결혼식에선 공연스레 마음이 울컥해지다. 좋은 짝을 만나 부모에게서 이소하는 기쁜 날인데 마음이 허전하며 슬프다. 그래서 난 결혼식에 잘 가지 않으려한다. 오늘 결혼식을 한 신부는 내 아들과 유년시절을 바로 옆집에 살면서 재미나게 보냈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자기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니 축복과 축하를 무한대로 보낸다. 우리 곁을 스쳐간 세월 속에 남겨진 추억들. 감사하고 행복했던 날을 기억하게 해 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