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쓴 글과 그림

동거(同居)

유쌤9792 2008. 10. 7. 21:15



★ 그림설명; 왓트만 종이에 글라스 물감으로 그린 그림.

 


♥...동거(同居)

들판을 돌아 다니며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모아 집 한 채 지었고,
집안 가득하게 식구를 들이고 겨우내내 집을 지키고 앉을 어미 새.
문득 감나무를 올려다 보다 발견한 새 둥지가 내 시선을 끌었다.

콘크리트로 건조한 아파트 주차장 한 편에 작은 화단이 있다.
그 화단의 밑은 아파트의 심장 박동을 울리게 하는 곳이다.
기계실 위에 흙을 덮어 작은 화단을 만든 이유는

기계실을 가리기 위함이였나?

아마도 오랜 시간동안 자랐음직한

감나무 한 그루가 화단을 차지하고 있다.
내 눈에는 연약하고

어린나무로 보여 나뭇잎을 달고 있는 것 조차도 겹겨워 보였는데.

가을이 끝나갈 무렵 감나무엔 작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척박한 환경에 놓일수록 종족보존에 힘 쓰느라 열매를 더 많이 맺고,
나무는 지탱하기 힘들어

부러질 정도로 마르고 말라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는...
아마도 아파트 주차장에 있는 감나무도 그런 마음이였나..!

무서리가 내리고, 잎이 물들어 땅으로 다 돌아간 지금.
내 눈을 고정시킨 감나무 위의 새 둥지와 한 개 남은 감이 나를 잡았다.
작은 감나무와 새 둥지 그리고 새 밥으로 남겨둔 감 한 개

아름다운 동거다.

아름다운 동거.

새가 둥지를 올린 밑의 나뭇가지는 더 단단해 보이고,
나즈막하게 달린 감은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봄 빛이 작은 화단을 찾는 날.

새 가족들은 둥지를 떠 날 것이고,

작은 감나무는 겨우내내 함께

기른 새들의 이야기를 위안 삼아 다시 겨울을 기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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