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억 속으로

어버지의 면도

유쌤9792 2006. 9. 10. 20:15


★ 그림설명; 머메이드지에 펜과 색연필로 그린 그림.

내가 태어나고 27년을 살았던 삼선동 5가의 한옥 집.
지금도 꿈을 꾸면 한옥 집에서 동생과 노는 꿈을,
동네의 곳곳을 누비며 뛰어 다니는 꿈을.
나이를 먹었어도 내 어릴적 집은 아직도 날 어린 아이로 놓아 두고 있는 것 같다.


아침이면 정 남향 집이라 햇살이 좋아 늦잠을 도저히 잘 수 없던 집.
우리가 늦잠이라도 자려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채 응석을 부리면,


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얘들아 해가 너희들 똥꿍을 찌른다. 어서 일어 나거라.
일찍 일어나는 새가 모이를 더 줏어 먹는다고 했다.
게으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것이란다."라고........



★★ 아버지와 면도.

아버지는 거의 아침마다 면도를 하셨다.
내 방에서 밖을 보게 붙여놓은 작은 유리로 아버지의 면도전 예술을 지켜 보던 일.

내 방 옆 기둥에 매어 놓은 소가죽 혁대에 면도 칼 가는 휙휙~썩썩~~~
소리를 들으면서 아침 잠에서 깨어 나곤 했다.

아버지는 '나는 남들보다 수염이 더 잘 자란다고'하시면서
그 송곳 같은 수염으로 우리들의 볼을 부비시려고 하면
우리 형제들은 모두 다락으로 뛰어 올라갔다.^^*

다락으로 뛰어 올라가는 우리들을 웃음으로 보시고는
아버지는 상아로 만든 손잡이의 면도 칼을 가죽 혁대에 다듬으셨다.

아버지의 면도 칼 다듬으시는 솜씨는 거의 예술이였다.

긴 가죽 혁대를 한 손으로 잡으시고는 아주 천천히 밑에서 위로,
그리고는 칼 날의 방향을 바꾸어 위에서 아래로
내려 올 때는 아주 빠르게,
이런 왕-복 칼 가는 일이 여러번 행하여 진 다음에는
칼 날이 섰는가 손끝으로 살~살 만져 보셨다.

나는 아버지가 '혹 손이나 베이시면 어쩌나
'하면서 그 광경을 지켜 볼 때마다
숨을 멈추고 침을 꼴깍 삼키기도 했고,
너무 긴장하여 밖을 내다보는
내 모습이 들킬새라 작은 유리로는 눈 한 쪽만 대고 보던 기억이.....ㅎㅎ

칼 갈기가 다 끝나면 아버지는 작은 솔에 비누를 듬뿍 묻히셔
뱅글뱅글 돌리면
작은 솔엔 솜사탕같은 하얀 거품이 가득 생겼다.

그 비누거품을 얼굴에 바르시면
아버지의 모습은 꼭이나 겨울의 산타 할아버지를 연상시켰다.

대야 가득 김이 모락모락나는 더운 물이 담겨져 있었고,
엄마는 면도하시는 아버지 곁에 서서 수건을 두 손으로
지극하게 들고 계셨다.

날이 반짝하게 선 면도칼로 아버지는 능숙한 솜씨의 면도를 시작하셨다.

칼이 지나간 자리의 아버지 얼굴은 파란 색을 띤 모습으로
너무 상쾌해 보였다.

너무나 잘 생기고 근사하신 울 아버지의 모습에
집이 환해 보이는 순간. ^^*

아버지의 면도 하시는 모습이 어찌나 멋있게 보였던지
내가 남자들을 만나면 제일 먼저 남자들의 턱을 보는 습관이..^^*

그러나 아버지처럼 수염이 송곳처럼 뾰족한 남자는 아직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면도는 내가 어른이 되어도 계속 되었고,
엄마가 돌아 가실 쯔음에는 아버지도 전기 면도기를 사용 하셨는지
집에서 더 이상 면도 칼날 다듬기를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유품 안에 들어있는 상아 손잡이의 면도 칼과 상아 거품 솔.
( 소 가죽 혁대는 아마도 다 닳아 없어졌을 것이고,)
면도 칼과 비누 거품 솔엔 아버지의 추억이,
내 추억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아버지에겐 어렵던 미국 유학시절 쓰시던 물건들이라 향수를 불렀을 것이고,
나에겐 아버지를 내내 생각 할 수 있는 물건들이라 향수를 불렀다.

그러기에 지금도
넓적한 소 가죽 혁대를 보면 아버지의 면도전 예술이 생각난다.

그리움은 늘 작은 기억에서부터 연기처럼 피어 오른다.


♥궁시렁---내 어릴적 집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는데,

아들과 딸이 어깨 너머로 내 그림을 보더니 하던 말.
"에그 엄마네 집 마당에 박혀 있는 타일이 왜 그렇게 촌 스러운거야??"


" 어이구. 모르는 소리는.
내 어릴 적엔 마당에 타일 박은 집은 없었다고!
애들이 뭘 몰라도 한참을 몰러!!!!. 그 타일 할머니가 계 타서 만든 타일인겨!^^*"


짜아식들~~~~~ 지들이 그 예쁜 한옥 집을 알기나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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