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쓴 글과 그림

산행을 시작하던 날

유쌤9792 2008. 10. 21. 20:08




★ 그림설명; 왓트만 종이에
아크릴 물감과 혼합재료로 그린 그림.


사람이 하늘로 가까워지는 산 길.



봄이 무르익은 산을 향한
야간 산행은 두려움을 주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흥분과 호기심으로 두려움을 베낭 밑으로 감추는 듯 했다.

동행이 있으면 더 좋고,
없으면 하늘을 접시 인냥 걸터 있는 달을 벗 삼아 올랐다.

날이 쨍하면 그 쨍한 기운을 피해 그림 속에 숨어 있다가
흐린 날이면 신경통이 돗이는
사람처럼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산으로.

산에서 만나는 이들 모두는 다 내게 마음을 열었다.
처음보는 이들이면서도 말을 건네 왔고,
바짝 마른 라면이나 건 포도를 부스려서 주기도,
이렇게 격 없이 친해지는 야간 산행.

사람의 발길로 길이 곧게 난 산길을 걷다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서열이 정 해져 한 사람씩 차근하게 오른다.


대학 때 우연히 산행을 시작했다.

5월의 축제 홍보로 이 학교 저 학교로 돌아 다니던 때.
라일락, 장미가 시샘하는 젊음이 터지려던 대학시절.

언덕이 유난히 길고 가파르던 어느 대학교정을 내려 오는 길에
우리들의 옷 차림이 조금은 도발적이라 여러 사람들의 표적이..

<초 미니스커트에 큼직한 숫자가 써 있던 흰색 티샤스에 긴 생머리.
미대생들이라는 냄새를 의상에서 풍겨야 축제 티켓을 많이 판다면서
우리 과 친구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아주 야한(?) 옷들을 서슴치 않고 입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정신이 다 아찔하다.

바람에 살랑이는 긴 머리에 경쾌하게 걷던 우리들에게
그 학교의 산악부가 딱 걸려 들었다.
일명 '사랑나누기'의 티켓을 무더기로 그 산악부에게 팔았고,
그 댓가로 우리 과 친구들과
산악부 학생들과 산악미팅을 하기로 했다.

산악 미팅....!!!
아주 독특한 발상이기는 했어도
과 친구들은 티켓 판 것에만 관심이 있지
산에 가는 것은 싫다고들 했다.
나즈막한 언덕에서 잠시 밥 만 해 먹고 온다고
친구들을 살살 꼬셔서 드디어 미팅을.

산악부 머슴아들과는 북한산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고,
우리는 가벼운 반바지에 운동화 정도, 아니 구두를 신고 멋을 부린 친구도 있었다.

저런~저런~기절 직전.
산악부 머슴아들을 발견 한 순간 우리 모두는 뒤로 자빠졌다.

그들의 모습은 정말로 히말라야라도 정복하려는 차림들로 보였다.

우리 키의 반 만한 베낭과 어깨에 맨 알록달록한 자일이며,
완벽한 산악인의 모습으로 무릎을 덧 댄 반바지에 등산화까지....

친구들의 시선은 가시가 되어 나에게 꼿혔고
모두가 도망 갈 기세로 나를 바라 보면서 하는 말.
" 야 우리 쟤들에게 판 티켓 값 다 돌려주자.
누구 죽일 일 있니?"

에그~에그~그날 산악 미팅은 극기 훈련이였다.
그 다음부터 과 친구들은
**대학교의 미팅이 들어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나는 그 계기로 그들을 따라서 산에 다니기 시작을 했다.
그 산악부 머슴아 중에 누군가가
내 등산장비를 다 챙겨서 학교로 가지고 왔다.

노란 가죽 등산화에 두툼하고 줄 무늬 있던 등산 스타킹에,
빨간 베낭에 은 빛 코펠 마다엔 내 이름을 매직으로 써서......

그리고는 은근하게 하던 말.
"이 물건들이 산에 다 잘 맞나 우리와 몇 번 산에 갑시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나의 산행은 그 때부터 겁 없이 시작 되었다.

그림 그리는 일도, 친구들과의 주말 약속도 다 버리고
봄 부터 시작 된 산행은 여름 야간 산행에까지 이어지고
언제부터인가는 혼자서도 산행을 즐겼다

그 긴 산행이 내 20대를 벗 해주었다.

그리고 그 애잔했던 기억들 모두가
가끔씩 산에 대한 그리움으로 행복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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