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쓴 글과 그림

<선지해장국>과 팥의 알갱이가 굵은 <시루 떡>

유쌤9792 2009. 1. 16. 07:28

 




★ 그림설명; 왓트만지에 특수 물감으로 그린 그림.


푸른 기와에 봄이 열리고 있다.
들쑥날쑥 어느새 잡초들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긴 겨울을 지내느라 꽝꽝 얼어버린 푸른 기와가 잠시 기지개를 폈더니
그 사이에서 작은 풀들이 봄인 줄 알고 미리 나왔다가 놀랬나보다.

푸른 기와 저 너머 하늘로는 붉은 노을이 물들고
일 없이 매달린 추녀 끝의 물고기 풍경은
언제 제 몸을 흔들어야 하는 줄 모르고 지나가는 겨울바람만 탓한다.


나도 긴 겨울을 지내느라 너무 몸과 마음을 살찌웠는지

지금 내 곁을 지나가고 있는 이의 심장에서 울리는 소리가
지나가는 바람소리인지~~~ 지나가다 머무를 바람소리인지 내 귀만 탓하고 있다.



아주 예전부터  오래 된 말도 안 되는 습관으로.

난 몸이 아프기 시작을 하면 경고라도 하듯
<선지해장국>과 팥의 알갱이가 굵은 <시루 떡>이 먹고 싶어진다.

예전 내 엄마가 계실 때에는 선지를 사다가 고춧가루와 콩나물을 넣고
거기에 들깨가루 박박 비벼 펄펄 끓여 내게 주셨다.

또 고사 날도 아닌데  내가 시루 떡 타령을 하면
붉은 팥을 물에 푹 불렸다가 작은 주전자만한 시루에 떡을 익혀 주셨다.

요즘 긴 겨울을 너무 바지런하게 일개미처럼 쏘다녔더니
그만 슬금슬금 아프려고 하는지 <선지해장국> 생각이 굴뚝같았다.



<들깨가루 듬뿍 뿌린 선지 해장국.>


이른 아침 내 휴식과 같은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너 뭐하니 ? 개학도 다 되었을 텐데 나와 밥이나 먹자
너 선지 해장국 먹고 싶을 때가 된 것  맞지?
차 너희 집 앞에 댈 테니 어서어서 뛰어 나오렴 >

오메 내 친구는 내 맘 속에서 사는 요정인가 봐!

자다가 벌떡 일어나  식구들의 아침도 굶긴 채 세수도 안 하고
친구를 따라 <양평 선지해장국>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팔현리 화실로 가는 길 넘어 있는 <양평 선지해장국집>
언제가도 맨발로 뛰어나와 반기는 주인아줌마의 정이 좋은 곳.

<얼마든지 더 달라고 하셔요 많이 드셔요.
부족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 하셔요 등등>

울 엄마처럼 내 곁에 붙어 앉아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주인아줌마.

내가 이 <선지해장국>이 입에서 그리워 아프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아줌마의 살갑고, 정 깊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싶어서다

내 휴식과 같은 친구의 동행이 늘 목화솜 이불속 같은 사랑이라
응석을 부려보고 싶은 것 일 런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땀을 흘리면서 <선지해장국>을 먹고 났더니
뱃속이, 마음속이 든든해져 입춘을 시샘하는 찬바람도 예뻐 보였다. 

난 인덕(人德)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남들에게 잘 하는 것도 없는데 그들은 나에게 너무나 살갑게 잘 한다.

無財七施를 생각하게 하는 날이었다.